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약속할 때 새끼손가락 걸고, 엄지 찍고, 복사하고, 도장 꽝꽝 찍어도 약속은 참 지켜지기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람의 약속이란 것이, 사람은 믿을 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혼 약속도, 동업을 해도 참 지켜지기가 어려운 걸 보게 됩니다. 왜냐면 약속의 주님을 알아야 약속을 할 수 있고 지킬 수도 있습니다. 약속의 주님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자신있게 명령하십니다. 오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1.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해야 합니다.
1~3절.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제 인생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제 인생의 시작을 알아야 제가 전하는 말씀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으면 왜 저런 이야기를 하지? 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개인의 구속사에도 서론 본론 결론이 다 있어야 합니다. 먼저 쓴 글에 기록된 내용 보니, 예수님 행하시며 가르치셨습니다. 성령으로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잘 죽어야 승천하겠죠. 내 인생의 목적은 잘 죽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잘 죽기 위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느 목사님은 죽을 병에 걸린 사람에게 잘 죽으라고 인사를 한다고 해요. 잘 죽으면 천국 가고 얼마나 좋아요? 라고 한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처럼 죽고 예수님처럼 부활하는 신앙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 = 구원의 이야기. 우리 삶 통틀어 구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경 차례차례 잘 읽어가다 보면, 구원 위해선 반드시 십자가 져야 한다는 거예요. 행하는 것, 잘 죽는 것 다 십자가 입니다.
그래서 3절에, "고난 받으신 후에"가 중요합니다. 내가 강력한 하나님 나라 일을 말하고자 할 때 고난 받는 것은 필수입니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이건 있어야 하리라. 마태복음 24장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누가복음 13장에도 있으리니 말씀하고 계십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있어야 하리니", 자식이 집을 나가도, 질병, 부도의 문제에도 "있어야 하리니" 이러면 됩니다. 예수님 공생애 중 그렇게 잘 사셨어도 십자가에 달려 수치 죽임 당하는 고난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고난 받을수록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강력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으신 후 부활하시고 가르칠 것이 있으셨어요. 예수님 죽음과 십자가 사건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사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사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죽었는데 거기서 살아났다는 확실한 많은 증거 있어야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고난 당해도 하나님 나라의 일로 생각하고 하나님 나라 일로 말하려면 뭘 알아야 겠습니까? 하나님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아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건 증거할 수 있는 인생이 되는지 모릅니다. 주님 말씀 묵상이 내 마음에 임하게 되면 어떤 원수보다도 지혜롭고, 어떤 스승보다도 승하고 어떤 노인보다 명철하다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내 마음 판에 새기는 것, 큐티를 하는 것은 정말 지혜로운 일입니다.
저도 남편의 죽음의 사건을 통해서 에스겔 말씀으로 얼마나 많은 증거를 나타냈습니까. 아이들이 입시에 실패해도 그때마다 데살로니가전서, 계시록말씀, 재수할 때는 요한복음 말씀, 죽고 떨어지는 사건에서 항상 말씀으로 증거할 것들이 있었기에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3년 반동안 동행했던 제자들에게 조차 가장 필요한 소식은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이었어요.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승천하지 않고 40일 동안 적어도 7차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성경의 쓴 바 자신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성경을 풀어주실 때 제자들의 마음이 갑자기 뜨거워지며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그들에게 맡기실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의 현장을 가리키는 말인데, 예수님이 3년동안 가르치셨던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말씀으로 자신을 확실하게 증언하시고 주님을 만난 자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이란 사명을 주시기까지. 이것이 사도행전이 시작되기 이전에 있어야 할 사건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해줄 말이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이어령씨의 딸 지금은 작고한 이민아 목사는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검사 생활을 하는 등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많은 고난을 겪었어요. 이화대 영문과를 조기졸업하고 너무나 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았다고 생각해서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반대하는 결혼을 해서 미국에 갔어요. 돈 하나도 없이 주유소에서 일하고 아이 낳고 사려니까 너무 지쳤는데 그 가운데서 남편의 사랑의 언어는 깨끗이 청소하고 쉬는 것인데 이 목사는 바닷가에서 차 한잔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사랑 하나 보고 갔는데 이제 사랑이 없어지니까 왜 살아야 하냐고 생각해서 이혼을 했어요. 그리고 재혼을 했는데 자폐아를 낳았어요. 아이를 위해서 학교를 7번이나 옮기고 하와이까지 갔는데 본인은 실명의 위기까지 가고, 생각못한 너무나 잘 자란 첫 아들이 26살까지 너무 잘 자라 주다가 감기 한 번 걸렸는데 죽었습니다. 이 세상이 다 무너졌습니다.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 정말 이 집이 금수저잖아요. 그런데 아들이 죽으니까 처음으로 다른 집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해요. 자기는 정말 자기 아들과 남의 아들을 차별했는지 몰랐는데 차별했다는거죠. 아들이 죽고 나서야 차별이 없어져서 힘든 아이들에게 달려가는 목사가 됐다고 합니다.
고난 받은 삶은 이렇게 하나님을, 후에 이걸 다 증거했으니까 우리가 알잖아요? 너무나 좋은 환경입니다.
적용질문
내 고난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체험을 말해줄 수 있습니까?
2. 사도에게 분부하십니다.
4절.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재시에는 누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이 땅에서 알려줍니까? 그래서 사도와 함께 모이시고 분부하셨다 해요. 2절에도 택하신 사도에게 성령으로 명했다고 지난 주에도 말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통해 구원 사역을 계속해야 하기에 사도가 중요합니다. 아무나 제자 훈련을 시키는 것이 아니고, 택하신 사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제자들이 주님의 사역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 증인으로서의 능력을 갖추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그래서 명하시고 분부하시고 계속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늘 대중 설교를 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는데 무엇 때문에 열 두 제자들 두고 훈련하셨겠습니까. 오늘 날을 만인 사도의 시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와 사도직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거치고 구원을 받은 자라면 누구도 나는 이 사도 못해,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이런 변명은 할 수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 때문에 믿어 순종해야 합니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믿음이 내가 순종하도록 밀어 붙입니다. 택하신 사도가 바로 이런 믿음의 사도 입니다. 그 사도와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양육할 때 각자 초등학교 어디 나왔는지 물어봤어요. 남녀 합쳐 30명 쯤 되는 사람 중에 그야말로 저 혼자 빛나는 초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대부분 시골 출신이구요. 시골도 아주 깡 시골에서 자란 분들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휘문고등학교 우리들교회에 입성해서 목자를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빛나는 학교를 졸업했는데, 내가 인생 말년에 시골 뜨기들을 만나려고 평생을 헌신했나 이런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잘 새겨 들으세요. 그런데 제 제자 동무들 중 영력이 있는 사람들은 더 시골 출신이더라구요. 서울 출신들은 상처받으시면 안됩니다. 서울 출신인게 뭐가 죄냐고 이렇게 막 항변하신 분들도 계셨어요. 굳이 비교 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시골에서 고생하고 도대체 어떻게 학교를 다녔을까 하는 분들이 기적처럼 서울에 와서 대학 공부를 하고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적으로도 기적적인 인생을 사는데, 출신이 깡 시골이니까 기본이 겸손하더라구요. 제가 그걸 알았어요. 그리고 시골뜨기의 특징은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거더라구요. 그래서 시골뜨기들이 큐티를 해도 아주 듬직하게 잘합니다. 큐티를 해도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분들은 주로 서울에서도 과외 공부를 했다던가 이런 사람들이 큐티를 해도 일관성이 없더라구요. 사도 바울이 다소시 출신에 로마 시민권자에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이제 지금 생각해보면 요새도 KS 마크라는게 있나요? 그런 출신인데 로마서 16장에 유언을 하면서 정말 보고 싶어한 사람 중에는 다소시 출신 로마 시민 하나도 없고 남녀 노예 청각장애 이런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 우리들교회는 정말 성경적인 교회 맞습니까? 할렐루얍니다. 삼성동 한복판 휘문고등학교 강남 한복판에 시골뜨기가 입성해서 역사가 일어나고 있어요. 택하신 사도들에게 명했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택하심은 지위와 학력고하가 문제가 아니라는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줘야 겠습니까?
새가족 수료 하신 분 얘길 하시는데 그렇게 욕하고 떠들던 자기 아들이 온지 한달 되니 큐티를 하더라고 그 얘길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교회 다니는데, 제가 다니던 빛나던 초등학교에는 너무도 유명해진 동창이 많지만 정말 아무도 교회에 안다녔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회는 전부 가난하고 공부 못하고 코흘리는 애들만 나왔는데, 제가 교회를 가라그러니까 가지 뭘 또 좋아서 갔겠어요. 이상한 애들만 모여 있어서 정말 싫었는데 그렇게 교만하게 교회를 다녔지만은 그래도 하나님이 저를 축복하시는 이유는 그래도 제가 교회를 다녔기 때문이에요. 반주 하니 개근 해야하잖아요. 할 수 없이 저는 사명을 받아서 봉사라고 할지라도 직분이 참 무서운 거잖아요 그죠. 교회는 학교와 사회와 다릅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병든 사람도, 말썽쟁이도 착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울려 가면서 있고 배우고 착한 애들은 그렇지 못한 반대되는 사람들을 섬기는 걸 가르치는 게 교회입니다. 학교에선 끼리끼리 놉니다. 제가 아이들 사립학교 보내보니까 그 중에서도 엄마들도 끼리끼리 놀고 상처의 연속입니다.
교회 어려서부터 가야 하는 이유는 성경적 가치관을 교회 아니면 못배우기 때문입니다. 이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 부르심 받은 사도이고, 택하신 사도가 해야할 일입니다. 물론 주님이 택하신 사도 중에서 1/15은 틀렸습니다. 12명 중에 가룟 유다가 나왔습니다. 제 목회도 제자들 중에 몇 %는 틀릴텐데 예수님보다는 더 틀려야지 되겠죠? 그 생각 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명령하셨듯이, 나도 내 본성 내 실력이 아니라 고난 받았기 때문에 성령으로 명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으로 내가 고난을 극복했기 때문에 당신도 말씀보고 이혼하지 마라, 아이가 힘들게 해도 기다려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그러면 약속을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 어떤 경험 보다도 내 고난이 앞서 간다는 것을 제가 알았어요. 잘 행하고 잘 가르치고 잘 명하고 그러려니까 내가 택하신 사도를 잘 분별했으면 좋겠고, 내가 또 잘 분별당했으면 좋겠습니다. 배우자를 골라도 성령으로 택한 사람인가 아닌가 분별하면 좋겠습니다. 자녀도 배우자도 진로도 잘 분별하고 내가 잘 분별당하게 이런 걸 기도해야 합니다.
적용질문
예수님께서 함께 모이기 원하는 사도의 반열에 들어가셨습니까?
3.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4절.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는데, 예루살렘이 어딥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 산입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했다가 하나님께 야단 맞고 온역으로 다 죽은 다음에 제사를 지냈던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예수님의 십자가 지신 골고다 산이 됐습니다.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모리아 산. 온 백성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오르난의 타작마당. 인간적인 관점에서 내려놓음과 슬픔과 죽음과 고통의 장소가 성령이 임하면 전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골고다 산이 된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이 돌아가신 곳인 예루살렘은 좋은 기억의 장소가 아녜요. 대부분 갈릴리 출신이었던 사도들에게 떠나지 말라는 것은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을 거예요. 왜냐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 예루살렘을 떠난다면 그 죄책감을 가지고 무슨 사역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대 명분이 급하고 당장 내가 해야할 일처럼 여겨지는 일이 있더라도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에 증인이 되기로 작정한 이상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됩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해야 나의 옛사람이 죽고 스스로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이 예수님의 분부를 가슴 속에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선 내가 있는 곳을 성전화 시키십니다. 환경을 바꾸려 하면 안됩니다. 내가 있으므로 속물이 성물이 되고 내가 있으므로 성화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있으므로 성물도 속물이 되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있으므로 집안에 문제가 일어나는 트러블 메이커도 있습니다.
적용질문
나의 예루살렘, 즉 떠나지 말고 있어야 할 내 힘든 곳은 어디입니까?
계속 봅니다. 4절 후반부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려면 들은 약속이 있어야죠. 성경 말씀은 약속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으려면 이 약속의 명령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기 때문에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래서 약속에는 반드시 기다림이 수반됩니다. 그래도 기다려야 합니다. 오래 기다릴수록 약속이 이루어지는 게 더 기쁩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2000년이 지났는데 유대인들이 안 돌아오고 있어요. 내가 저주받아 끊어질 지라도 형제 골육의 구원을 원한다고 했는데 아직 유대인들이 안돌아오고 있죠. 여러분들은 너무나 그런 것 때문에 안타까워 하지 마세요. 함께 모이사는 식사하기 위해 모일 때 이 단어를 쓰는데 이제 적은 수가 모였다는 뜻도 있어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분부한 것을 들은 바 약속을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을 듣는 대상은 지극히 소수라는 거예요. 부활하신 주님은 진실한 성도에게만 보이시기 떄문에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설교 들었지만 기다리라는 약속의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입니다. 여러분들이 사건이 올 때마다 기다리라고 그러면은 내가 어떻게 기다려가 여러분들의 주제가죠.
이번 주 큐티인 본문 말씀 묵상 간증입니다. 로마서 3장 얘기예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선교 단체에서도 훈련을 받았지만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고생시키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로 성실해 보이는 남편과 불신결혼 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 복을 주셨다고 합리화를 하면서 남편이 가져다 주는 물질의 복을 누리고 자녀들을 어떻게 해야 잘 키울까 궁리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달려가던 저를 남편의 실직을 통해서 제동을 걸어 주셨어요. 내가 기도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실거야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복음 속으로 밀치시는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여기 선교 단체에서 훈련 다 받았다고 했죠? 그러나 2년이 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편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고, 기도하던 중에 남편의 실직이 풀리기를 위하여서 내가 대단한 적용을 좀 해야겠다고 그래가지고 드디어 믿지 않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기로 적용을 했어요 이분이. 그런데 날마다 쏟아지는 시부모님의 질책은 숨을 쉬기도 힘들만큼 저의 영육을 피폐하게 했고, 남편의 실직과는 비교도 안되는 고통을 겪게 되었는데 도로 가라고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내가, 예수 믿는 내가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지옥이라는 거예요. 너무나 죽을 것 같아서 남편은 실직이요 시부모는 너무나 괴롭히는데 살려달라 기도를 했는데 그 응답으로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라는 책을 선물로 받게 되었대요. 책이 이렇게 한 사람의 가정을 살리잖아요 그죠. 반드시 뜻이 있을 거예요. 책을 받는 사람들은. 인간은 거기 보니까 100% 죄인이다. 나를 힘들게 한 시부모보다 시부모를 미워한 네 잘못이 더 크다는 말씀을 들으며, 나의 죄를 회개하였고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니 환경이 달라진 게 없는데 숨을 쉬게 됐습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하지만 하나님께 무관심하고 죄에도 무감각할 때,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주님이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사건인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과 화목하는 복을 누리고 있는데 시부모님은 그냥 일주일에 한 번만 교회가면 되지 왜 자주 가냐고 시부모님 때문에 난리가 나고 날마다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불평과 원망등의 감정들로 부글거리는 저를 살린 것은 말씀이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화목을 위해 죽어지는 것이 구원받은 내가 할 일이라고 가르쳐주셔서, 하나님을 모르는 남편과 시부모님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행복한 며느리도 있지만은 이 시부모님은 또 며느리가 안믿어서 고난인 집도 있고 다 있어요. 그러던 중에 사무엘하 5장에 여부스 성이 약속의 다윗성이 되던 날 약속의 말씀대로 시아버님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가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다른 종교로 바꾸라고 그런 자신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노하셔서 그리도 예배를 방해하고 핍박했던 시아버지가 예수님을 영접한 사실은 오직 값없이 베푸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아직도 형편 없는 저이지만 그 은혜에 감격해서 남은 식구의 구원의 통로 역할을 잘 감당하며 가길 원합니다.
할렐루야. 추석을 맞이해서 이 적용이 여러분의 적용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고난을 받고 나니까 강력한 하나님 나라의 증거가 있어요. 자, 이렇게 핍박을 받으니까 이분은 우리들교회 초원지기가 됐어요. 그거를 나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고난받는 와중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하나님 나라 일은 이렇게 실현이 되었습니다.
적용질문
떠나지 말고 있어야 할 나의 예루살렘에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며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4.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5절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할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이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의 불세례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의 세례와는 완전히 구별된 성령 세례란 것이 있다는 거예요. 받을 것을 약속하셨어요. 진짜 성령 세례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세상이에요. 이런 창조적인 언어는 없어요. 마치 출생이 일회적 사건이듯이 성령 세례는 일회적인 사건인데, 성령 충만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경험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 충만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시는 거예요.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그 힘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된다는 거예요. 물세례는 회개를 상징하고 성령 세례를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성령 세례는 죄악된 본성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거예요. 신앙에는 연륜이 필요한 거예요. 물세례에서 성령충만까지 이루어져 가는 데에는 자기 부정과 십자가를 잘 지는 것이 필요하고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면 시작도 안되는 거예요. 아무리 성경을 봐도 저 사람이 성령 세례를 받았나 안받았나가 딱 느껴집니다. 성령 세례를 안받아서 우리는 너무나 이유가 많습니다. 근데 만남이 확실하면 정말 저 사람 성령 세례 받았구나 이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뭔가 교회를 왔다 갔다는 하는데 맨날 적용이 안되고 한 마디 하면 열마디 하는 것은 내가 땅 끝까지 내려간 경험이 없어서 십자가에 못박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게 뭔지 몰라요. 부활한 주님이 부활하고 가르치셔야 되는 게 있어서 이걸 가르치시는 거예요. 성령 세례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하게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셔야 돼요. 말을 못알아 들으니까 어떤 분이 지금 너무나 사업이 힘들어지고 그러니까 교회를 그렇게 오래 나오셨는데 헌금을 돌려달라고 저에게 메일을 보내셨어요. 정말 오래되셨거든요? 이거 어떻게 설명이 안되는 거예요. 내가 냈는데 힘들 때 돌려주는 거 맞지 않냐. 13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인 거 있죠? 그러니까 주님이 지금 5절까지 이걸 가르치시기 위해서 명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6절에 제자들의 반응을 좀 보세요.
6절.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스라엘 백성이 식민지 치하에 로마가 엄청나니까 세상적 메시아가 와서 우리 나라를 언제 회복시켜 주나 이것밖에 모릅니다. 아무리 들어도 언제 돈이 벌리나 이 생각밖에 못하니까. 그리고 끝까지 제자들도 이스라엘을 통해서 자기 민족 중심으로 세계가 통일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내가 우리 나라를 중심으로 선교가 됐으면 좋겠다도 맞지만은 우리 나라를 통해서만 선교가 돼야 한다 이건 또 아니잖아요 그죠?
일본 우찌무라 간죠는 일본 기독교계 아주 존경받는 인물이에요. 동경제대 전신인 동경제일고등학교 선생으로 가르치면서 일장기를 보고 절을 안했어요. 이것이 일본에서는 유명한 우찌무라의 불경죄라고 해요. 일본에서는 천황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반역입니다. 이것 때문에 고초를 겪었어요. 그런 그분도 민족주의의 한계가 있어서 그의 묘비 병에는 나는 두 죄인을 사랑했다 하나는 지져스 하나는 제펜이다. 일본을 사랑하는 것까진 좋았지만, 그분에게도 일본의 국수주의와 민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일본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있었다는 거죠.
성령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자나깨나 우리도 우리 애들이 좋은 학교 다니고 좋은 회사 취직하고 나는 신결혼을 해도 배우자 스펙이 좋아야 하고 우리 집이 잘 돼야 되고 내가 다니는 교회가 잘돼야 되고 그게 아닌 거예요. 어디를 다녀도 같은 언어 쓰이게 돼야 되는거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책을 펼치고 목회자 세미나를 하고 같은 언어 쓰자고 하고. 이걸 아셔야 되는 거예요. 우리만 잘났다고 하다 나중에 우리가 정말 발 디딜 곳이 없을 수가 있어요. 육의 회복을 바라는 이것이 내 모습이고 내 가족의 모습이고 우리 교회 모습입니다. 습관 하나 고치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렇게 오래 교회 왔어도 성령의 음성 안들리니까 내 습관 하나 고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중력을 탈출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거예요.
뾰족한 펜을 있잖아요. 뾰족한 쪽은 바닥에 놓고 세우려 하면 세워집니까? 근데 그 펜을 4억년 동안 세워놓고 고정시킬 수 있는 힘이 중력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중력으로 우주를 운행하시는 거예요. 누군가 우주를 붙들고 서있지 않으면 어떻게 해, 달, 별이 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수금지화목토천혜명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겠습니까? 이거 방언은 아니죠? 알아들었죠?
그러니까 우리는 1초도 못세우는 뾰족한 심을 4억년 동안 세워놓는 힘. 그 힘을 탈출하는 것 만큼 어려운 것이 습관이 변하는 것이라는 거예요. 그 중력을 탈출하려면 말할 수 없는 에너지가 소모되는 거예요. 말할 수 없는 힘으로 공부를 하고 사업을 하고 해도 그것까지 해서 내가 밥은 안 굶는데 성령은 못받는단 거에요. 내 힘으로 성령을 못받아요. 로켓 발사에도 대단한 에너지 필요한데, 그 대단한 에너지도 이 지구 밖으로 나가면은 무중력 상태가 돼서 딱 쉬워지는 거에요. 우주선 밖에서 둥둥 떠다니는데 그런 것처럼 습관이 한 번 들면 그 다음에 너무 쉬워지는거예요. 성경 읽는 것도 처음엔 너무나 어렵지만은 읽는 게 습관이 되면 그게 너무 쉬워지고 온 집안이 평안해 지는 게 있어요. 성경을 읽혀노니까 우리들교회가 편한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게 어려운 것 같지만 아니, 제일 쉬운 거예요. 제대로 된 길을 우리가 가기 떄문에. 우리가 몸도 제대로 된 습관을 들여야 건강하잖아요.
물론 그 전까지는 4억년의 중력을 탈출해야 하는 너무 힘든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 걸 인간의 힘으로는 나도 안변하고 내 남편도 내 자녀도 절대 안변해. 안변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셔야 돼요. 정말 안변합니다. 볼 때마다 눈물 흘릴 것밖에 없습니다. 은혜 받고 돌이킨 것 같은데 그 다음 날은 딴 소리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야. 성령은 너무 신비하고 창조적인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리가 그냥 성령, 성령, 주님의 성령. 정말 임하소서 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어. 주님의 성령이 임하여 달라고.
그런데 제자들처럼 날마다 육의 복 밖에 모르잖아요. 저는 수준이 높으니까 어떻게 제자들이 저러는가. 그래서 그런 사람 욕하려다가. 야~ 이딴 인간들이 다 제자가 됐구나. 이딴 인간들을 내가 존경해야 겠구나. 왜냐? 니고데모, 아리마데 요셉같은 사람들은 제자가 안됐어요. 어쨌든 중요한 건 제자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속을 썩이고 어쩌고 저쩌고 해도. 제가 무슨 얘길 해도 다 들어내고 붙어 있는 사람들은 괜찮은 사람들인거예요. 기회가 있잖아요 그죠? 한 명은 배반하겠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병이 나아도 또 다시 언젠가는 죽을 인생이에요. 회복이 뭡니까? 회복은 성령의 회개함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복입니다. 이렇게 얘길 하는데도
7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주님이 막 양육하시는 거예요. 때와 시기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기간과 일시를 뜻하는데,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 이세요. 기간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주님은 이것이 제자들, 니네들이 알 바가 아니다 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어요.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그러니까 너희 알 바 아니야! 주님이 양육 해주시는 거예요. 주님이 언제 오실지, 언제 하나님 나라 완성될지, 그 기간 얼마나 남았는지 그건 너희가 관심 갖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께서 지금 그 환경 주시고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너희는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알 바 아니고 회복의 때를 알려고 하는 것이 죄고 악이다.
내가 80에 죽는다 하면 지금부터 십 몇 년을 기다려야 돼요. 그런데 2080년 8월 15일 날 죽는다 하면 그럼 기분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우리가 70쯤, 여러분들 나이로 80쯤 죽겠지만 죽는다 그러면 아무렇지 않는데 정확한 날짜가 나와버리면 그때부터 아무것도 못하는 거예요. 때와 시기를 알려준다는 것이 이단이고 여러분의 기복적인 마음인데 그런 곳은 가면 안되는 거예요. 안알려주는 것이 축복이고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내가 내년에 죽는다 그래도 모르고 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아버지의 권한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습니다. 떄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순종하세요. 내일 당장 주님이 오신다 해도 우린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 심고 청소하고 밥도 먹고 직장도 나가야 합니다.
적용질문
때와 시기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인생이 일주일이 남았다고 하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5.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때와 시기보다는 가장 중요한 것 디 온리 원인거예요. 성령이 임하는 것이 중요하단 거예요. 성령이 임하는 건 내 생각에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는 걸 말해요. 주님의 부활의 사건이 나의 사건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게 됩니다. 진정한 권능은 은사나 방언이 아니라 용서할 수 있는 능력,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걸 말해요. 능력이 생기니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증인은 순교자 "마르투스"와 어원이 같습니다. 원어의 뜻은 수면 위로 돌맹이를 던졌을 떄 파장이 계속 퍼져나가는 것을 말해요. 십자가 지고 자기 부인을 하면서 내 환경에 순종하고 있으면 그것이 일파만파 퍼져서 증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증인이 되려면 내 환경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돼요. 법정에서 증인하고 변호사하고 비교해 볼때. 아무리 학벌 좋고 대단한 로스쿨 나오고 언변 가졌어도 법정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변호사가 아니라 증인입니다. 증인은 세 살 짜리 아이여도 고개만 까딱 해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증인이 될 환경을 주셨는데 왜 내 마음대로 환경을 짜집기 하냔 말입니다. 그러면 증인으로서 효과는 없습니다.
우리들교회 목장이 있는 모습 그대로 나누니 하나님께서 증인으로 써주시는 것이지, 자신을 과장하고 포장하면 쓰실 수가 없습니다. 바람피고 가출하는 이야기가 다 나오는데 모든 인생에 그거 없는 집이 어딨습니까. 내가 보고 들은 것만 이야기 하면 됩니다. 어떻게 변호사와 예수님 만난 것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정말 성령 받고 권능을 받아야 되는 일입니다. 내 죄가 보이기 시작해야 내 환경이 부끄럽지 않게 되고 이것이 권능을 받아서 가장 먼저 가서 증인 되어야 할 곳이 내 가장 힘든 곳, 오늘 성경에는 예루살렘 내 가정, 온 유대 교회, 사마리아 원수, 땅 끝까지 선교하라고 온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문자적으로 꼭 그렇다고 가정부터 복음화 돼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땅끝이 가정일 수도 있어요.
앞에 이민아 목사는,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버려진 아프리카 땅끝의 아이들 도우라고 하는 줄 알고 열심히 도왔어요. 그 다음에는 교회에서 상처주는 사람들과 사역하면서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으로 덮을 수 있게 되자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가족으로 보내셨대요. 그런데 가족이 제일 힘들었대요. 여기가 금수저 집안이잖아요. 너무 가깝고 익숙하기에 내가 주는 게 아니라 받고 싶은 관계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저를 이해하지 못해도 엄마 아버지는 무조건적인 인간적인 사랑을 받고자 했어요.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는 제가 받고자 하는 사랑을 주지 않아도 제 마음에 상실감과 상처가 깊이 뿌리 내렸어도 하나님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시면 "네 하나님을 따르겠습니다" 하며 사랑하기로 하는 것이 가장 큰 기적임을 알았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런 거예요. 그래서 이제 위암 말기가 되고 지금까지는 혼자 달려가면서 따라오지 않는다고 가족을 귀찮아하고 구박하고 미워했지만 이제부터는 어머니 아버지와 고저를 맞추며 내가 앞서면 기다리고 늦으면 당기면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면 그분이야 말로 사랑이라는 것을 같이 경험해야 겠다고 했더니 하나님께서는 "나는 네가 혼자서 맹렬히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그 믿음으로 얼마나 빨리 나의 기적에 체험하는 지에 관심이 하나도 없다. 나는 네가 체험하는 나, 나의 능력, 기적, 사랑을 세상에 가서 전파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 그 동안 네가 전파하지 못한 예루살렘인 너희 집 너희 가정 네 어머니 네 아버지에게 가서 전파하라" 그래서 투병 중에도 부모님에게 틈틈이 성경 읽어주고 사랑으로 다가 갔답니다. 간증을 하면서 그 결과 철저히 무신론자였던 아버지는 딸의 믿음이 나를 구원하였다고 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셨고 이후 이 목사가 인도하는 집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하게 되었어요. 다시 문자적으로 땅끝까지 전파하게 된 것입니다.
내 가정에서 이렇게 증인이 되기 시작하면 저절로 지경이 넓어집니다. 내 예루살렘, 그 무서운 곳, 시집과 남편의 예루살렘에서 잘 있다 보니까 저도 교회와 선교로 지경이 넓어져서 말씀그대로 땅끝 선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78년도 여의도 엑스플로 집회에 남편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그러니까 제가 너무 가길 원해서 같이 갔어요. 근데 그 날 비가 왔어요. 얼마나 화가 났겠어요. 부들부들 떨면서 언제 가자고 할까 그러는데, 선교사 할 사람 일어나래요. 눈치가 보여서 무서워서 못일어났어요. 근데 그 다음에 보내는 선교사 일어나래요 그래서 무서운데 그냥 일어났어요. 저는 지금 보내는 선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집순이로 있다가 세계 선교사 대회 주강사로까지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가정에서 증인이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저를 이렇게 쓰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권능은 성령 받은 증인들을 통해서 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언어를 알기 위해서 날마다 죽자고 성경을 읽히니까 이제 결국 제가 편해지고 교회가 신기하게 부흥이 됩니다. 이것은 권능으로 증인이 된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 명을 찾아다니며 심방을 해야 하는데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읽게 하니까 저는 이제 기도와 말씀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들에게 답답하도록 성경을 읽히면 진리의 성령님이 권능으로 임하셔서 중력에서 무중력으로 간 것 처럼 후일에 날이 갈수록 식구들과 이야기가 통하고 후일에 편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진리의 성령이신 성경을 읽히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적용질문
성령받고 증인 되라고 하십니다. 나는 인간적인 변호사가 좋습니까? 하나님의 증인이 좋습니까?
공동체 고백 - 증인들의 이야기
엊그제 삼혼 재혼 하시는 분들의 주례를 했어요. 축가를 부부목장에서 하고 직장목장에서 했는데 축가의 내용이 이런거예요. 세번째 세번째 세번째 두번쨰 두번째 두번쨰 신결혼은 첫번째 신결혼 신결혼 신결혼~ 이러면서 작사 작곡을 해서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해서 무서운 축가를 받았는데 모두 박수를 치고 본인들은 경고를 받은 진심어린 결혼식이었어요. 결혼식에서 삼혼 재혼이라고 다 밝히고 그러잖아요. 그것도 그렇지만 축가를 준비한 지체들의 준비 또한. 그거를 작곡을 하고 막 그냥 옷을 갖춰입고 나와서 이것만 한 게 아니에요. 세 곡이나 했어요. 정말 성령이 임한 증인들의 결혼식 이었습니다. 너무나 재미있었지만은 한 편으론 너무나 은혜가 넘쳐서 눈물 짓는 분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한 시간 동안 부흥회 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이 권능으로 임하셔서 증인이 되셔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증인들 때문에 신기하게 부흥이 되고 있습니다.
또 어떤 목자님은 로또 당첨을 맞아가지고 내가 위암 선고를 받았다고 목장에서 나누고 하시더라구요. 그분의 아들이 지난 주 결혼식이 있었는데 아들이 어릴 때부터 엄마가 퍼주는 게 너무나 싫었는데 지금은 그것으로 자신이 거두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는 걸 보면서 아이가 사명 대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나눔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 결혼식에 간 목원이 말하기를, 이렇게 목사님 아드님이 너무나 출중해도 이 어머니가 과부에다가 도우미로 일하고 계시는데 그래도 괜찮을까 싶었는데 너무나 결혼식의 많은 하객과 성대한 모습이 이 결혼식도 꼭 우리들교회 결혼식. 모든 모습에 마음이 짠하고 눈물이 났다고 해요. 모든 일들이 성령 받고 권능 받은 증인들의 행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령 받고 증인이 돼서 나가서 전하면 모두가 또 성령이 전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기 위해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에게 분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의 성령이 임하게 해달라고 우리 그것 밖에 기도하고 찬양할 게 없는 것 같아요. 주의 성령이 임하게 해달라고 다 같이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느낀점
내게 주신 가정의 고난, 관계의 고난, 과도하게 발달된 민감한 레이더, 치리, 앞으로 겪게 될 진로 취업 결혼 등의 고난들이 하나님께서 나의 구속사의 서론 본론 결론을 세우시기 위하여서 십자가로 주신 일들이었구나. 이 십자가의 사건들로 부활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세워가시는구나. 그게 내게 주시는 가장 큰 하나님의 사랑이시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의 떠나고만 싶은 예루살렘이 성령님이 임하셔서 살아나는 골고다 언덕이 되기 위하여 여기에 잘 매여 있어야 겠다. 떠나고만 싶은 나의 가정이었는데 오늘 추석을 맞아 가정 예배를 드림으로서 말씀이 있는 한 사람, 엄마의 20년 넘는 고난과 인내가 골고다 언덕이 되었구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심과 동시에 부활하심의 구속사가 우리 가정에 임하였구나.
앞으로도 예루살렘과 같은 환경이 끝없이 이어질텐데, 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비결은 내가 잘 인내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는구나. 끝없이 세상 성공, 돈, 내가 잘되고 우리 가족이 잘되는 인본주의적인 신앙이 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본성인데 이를 놓고 기도해야겠구나. 그렇게 성령받고 자기부인 하면서 내 환경 가운데 살아내는 것이, 그렇게 물에 파장이 퍼지는 것이 증인된 삶이고 순교자의 삶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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