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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회개] (사무엘하12:13-31) <2015.10.25>

햄스트링 2024. 9. 17. 17:15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19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됨이니이까 하니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 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26 요압이 암몬 자손의 랍바를 쳐서 그 왕성을 점령하매

27 요압이 전령을 다윗에게 보내 이르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읍을 쳐서 점령하였으니

28 이제 왕은 그 백성의 남은 군사를 모아 그 성에 맞서 진 치고 이 성읍을 쳐서 점령하소서 내가 이 성읍을 점령하면 이 성읍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하니

29 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그 곳을 쳐서 점령하고

30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박힌 왕관을 가져오니 그 중량이 금 한 달란트라 다윗이 자기의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읍에서 노략 한 물건을 무수히 내오고

31 그 안에 있는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철도끼질과 벽돌구이를 그들에게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목욕탕 목회 세미나를 지난 주 여러분들의 기도와 섬김으로 잘 마쳤습니다. 눈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해주시는 성도들의 간증으로 또는 영상으로 회개가 넘치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보일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성경책은 삼위의 하나님을 알아야 열린다고 했습니다. 삼위의 하나님이 믿어지려면 백프로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된다고 했어요. 그러면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보면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나를 살리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회개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이라고 했어요. 뉘우치는 인생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은 없습니다. 나를 살리는 회개는 어떤 회개일까요? 사람들은 자신이 다 회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구요. 다윗도 평생 회개. 가장 진실되게 한 회개가 밧세바 사건에서 한 회개인데요, 다윗의 이 회개는 분수령적인 회개입니다. 밧세바 사건 이전과 이후의 회개가 확연히 다릅니다. 오늘은 밧세바 사건 이후의 나를 살리는 회개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나를 살리는 회개 첫째는 죄고백이 있습니다. 

13절입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도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나단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인 죄를 1년 동안 은폐했던 다윗을 찾아가 비유로 지혜롭게 그러나 단호하게 책망했습니다. 다윗은 즉각적으로 회개를 했어요. 나단의 책망에 내가 죄를 지엇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이 고백이 다윗에게서 나왔다는 이야기 예요. 이런 본문 문자적으로 보면 야 내가 죄 고백하고 용서함 받으면 그것 참 수지 맞겠다. 근데 대부분 율법 주의자들은 다윗이 하나님께 인정 받기 위해 혹은 분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온 고백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죄를 지어도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사실 죄 고백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분수령적인 고백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죄는 음행이나 간음이나 도적질 이런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창세기 3장 5절에 너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같이 될 것이다 라고 했어요. 다윗 왕이 되고 나서 생각지 못했던 자기 사랑에 취했어요. 다윗의 자기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자리에 자기도 모르게 가 있었어요. 참 지식의 시작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다윗의 밧세바 사건 이전과 이후의 회개가 무엇이 다를까요? 다윗이 사울과 싸울 떄는 죄를 지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무차별 핍박의 시대였기 떄문에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하나님은 그때 다윗이 기도할 때마다 모두 응답해주셨어요. 핍박 때는 생존 우선, 내면의 죄까지 심각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기도하니까 돈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다 주셨다 이렇게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렇다는 간증을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자리에 있고자 하는 것 중에서 최고봉은 인정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기도로 응답해주셔서 드디어 다윗이 최고의 인정을 받는 자리에 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권세가 생기니 그 자리에서 죄를 짓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됐어요.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최고봉에서 죄를 지으면 이 죄를 고백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정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고든 맥도날드는 세계적인 영성 베스트 텐에 들어가는 사람이에요. 이분이 아내와 함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떄 라는 책도 쓰셨는데 내용 중에 우리는 위험의 순간을 겪고 지금 정상에 서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죽는 순간까지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는 내용으로 부부가 같이 책을 썼는데 이렇게 쓰고 난 후에 여자 문제가 터졌습니다. 다윗처럼 정점에서 이 문제가 터졌습니다. 결국 고든은 모든 직분 내려놓고 은둔했습니다. 그리고 징벌의 기간을 보내고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라는 책을 썼습니다. 고든은 "나는 세계가 무너져버린 사람을 가장 지독하게 비난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게되었다"고 했어요. 왜 자신을 비난하느냐 너는 네가 스스로 날마다 죄인이라고 했고 그게 증명됐는데 왜 그러느냐 라는 내면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다 자신을 외면하고 떠나버릴 것 같아 용서받은자의 삶 살기가 너무 어려웠다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회개 안에서 산다는 것은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자기 주제를 알고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에요. 이것은 항상 죄 지은 일만 찾아 헤매어 우리를 좌절시키는 병적 근성 같은 게 아니라 우리 내면은 항상 창조주 반역 불순종으로 흐려지기 쉽다는 걸 솔직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누구만 회개하고 나는 회개 안해도 되는 그런 것 없습니다. 우린 누구나 다 평생 회개해야 합니다. 고든 부부는 그들의 말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결혼 한 어떤 부부 두달도 안되어 이혼한다고 도와달라고 했어요.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했기에지옥을 살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신결혼이 얼마나 중요한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습니다. 결혼 메뉴얼 프러포즈가 나왔는데 어떻게 신결혼하고 지킬 수 있는가를 너무나 모르기 때문에 너무나 결혼을 쉽게 하고 이혼도 쉽게 하기에 결혼에 대한 모든 것을 책으로 냈습니다. 결혼을 지키는 것도 항상 내 죄를 보는 것이 가장 비결입니다. 사무엘의 본문 설교 했을 떄 어떤 목사님이 드디어 다윗의 회개가 끝났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러나 회개는 평생 계속되어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다윗은 앞으로 계속 회개할 일 있습니다. 회개는 일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에요. 밧세바 사건 이후, 이어진 회개는 자신의 내면을 직면하는 분수령적인 회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막의 교부들이 말하기를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사람보다 위대하고 자기죄를 위해 한 시간을 진실로 울부짖는 사람은 온 세상을 가르치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약함을 아는 사람은 천사를 볼 수 있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나의 약함과 부족함을 아는 것이 얼마나 지식인지 모릅니다. 자기 죄를 보는 사람들끼리 모여있으면 얼마나 위대한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것입니까? 이게 안되는 것이지요 부부 간에도. 

 

나단의 책망 받은 다윗의 회개가 비록 여기서는 한 줄로 나와도 그는 즉각적인 회개, 변명이 없는 회개, 겸손한 회개를 했습니다. 그가 쓴 참회의 시편 32편과 51편을 보면 음란과 간음과 살인죄를 범하고 있는 중에 나단이 와서 책망할 때 그가 처절한 회개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1편 4,5절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 의로우시다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 순전하다고 하시리라 내가 죄악중에서 출생하였음이요 어머니가 죄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주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는것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죄를 짓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런 죄에 대한 이야기가 사무엘 하 11장 전에는 없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모든 것을 잘 살다가 도덕적으로 또 잘 살다가 어쩌다 한 번 죄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윗이 깨달은 것은 스스로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물처럼 먹고 마실 수 밖에 없는 죄인이며 모태에서부터 죄악중에 출생했으며 죄밖에 지을 것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단 거예요. 여러분 이게 회개입니다. 내가 죄악중에 잉태할 수밖에 없는 걸 아는게 회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택하셨기에 엄청난 약속의 자손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네 나라를 영원히 하리라 약속하시며 사람매 인생채찍으로 그 죄를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입니다. 노아도 120년동안 수치 조롱 받았지만 방주에 들어가면 거기에 사람이 없어요 오직 자신과의 싸움. 그러므로 사람 아닌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디 가서도 못살 데가 없습니다. 노아처럼 방주 안에서도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이상한 부부생활 하더라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이상한 자녀와도.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알면 어디서도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자꾸 옳고 그름으로 생각하니 어떻게 저 인간이 저럴 수 있느냐며 못살아 내는 겁니다. 

 

마침내 다윗이 이걸 알았습니다. 여자 취하고 취하면서도 하나님 앞 자신 죄인임을 몰랐던 다윗은 후반부 인생에서 자기와의 싸움 시작됐습니다. 눈물의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더는 말이 없어지고 인내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오늘 간증해준 자매가 그렇게 바람피고 나왔는데 나이 든 남편이 30년이나 위고 지금 돈은 하루에 만원 밖에 못벌고 노령연금으로 살아가는 이 떄 저 자매는 모든 걸 갖췄는데 그래도 이혼하지 않고 살아내고 있어요. 이게 또 참 기특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취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바람을 폈으면은 지나가는 걸로 버리고 갈텐데 우리들교회 와서 말씀 들으니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시편 6편 6절에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다윗이 하도 울어 침대가 둥둥 떠다닌답니다. 우는 것에 대한 성경적 근거 보셨죠? 계시록 5장 4절도 사도요한이 두루마리 펴거나 볼 합당한 자 보이지 않아 크게 울었다 했는데 죄 때문에 울고 성경 보고 깨닫는 자가 없어서 운다고 계속 우는 얘기가 성경적으로 나옵니다. 저보고 뭐라 마세요 전 성경적으로 울어요. 여러분들은 분해서 울고. 시편 32편 3,4절에도 내가 입을 열지 않을 때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나를 누르시오나 내 진액이 빠져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이것은 내 죄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때 종일 신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든도 다윗도 얼마나 죄 짓고 나서 눌렸겠습니까? 그들이 최고의 정점에서 죄를 지었는데 아마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눌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은 전세계적으로 이것을 쓰셔서 이들을 통해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우슬초는 문둥병자 치료하는 풀입니다. 문둥병자 감각 없어 자기 죄를 모르는데 자기를 문둥병자 보다더 못하게 본 다윗은 우슬초로 자신을 씻어달라 했어요. 다윗이 여기까지 내려왔어요. 진짜 자기 죄를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 한 마디가 인류의 구원자가 되는 고백인 것입니다. 

 

시편 51편 16,17절에도 주께서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으리이다 주께서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꼐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시고 통회하는 맘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고백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제사 자체를 드리는 것 기뻐하지 아니하신대요. 출애굽기 28장에서도 제사장 들도 속죄제 번제 드려야 한다고 했지만 자기의 의를 보이려 하는 사람, 십일조, 예배, 구제, 헌금하니 내가 죄가 없다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나의 추함과 더러움을 보는 상한 심령의 제사인데요 이걸 누가 보겠습니까? 가인의 후예가 보겠습니까? 아닙니다. 한계상황 에노스와 120년 조롱 받은 노아같은 사람이 보는 것입니다. 다윗과 하나님이 세우시기 위해 처절한 길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진정한 참회는 단순히 뉘우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동일한 죄를 미래에 짓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예쑤님도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고, 죄를 고백한 다윗도 나단을 통해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허물의 사함 받고 자신의 죄 가려진 자는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다윗이 후반부에 눈물의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평강의 인생을 누렸습니다. 진정으로 낮아짐을 경험하며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권세에 대한 욕망 많아요. 정점에 올랐을 떄 다윗처럼 악과 음란으로 곤두박질 치는 경우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은 뭘 그렇게 회개를 날마다 하냐 그러시는데 저같은 삶을 남자 분들이 살기는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도 정점이라면 정점에 있었는데 사실 너무나 밑바닥 인생을 오래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될 감정을 너무나 많이 겪었고 또 겪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드는 일이 오고 가기에 날마다 회개할 것이 있게 해주신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라도 경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윗은 환난 많이 겪었는데도 큰 죄를 지었는데 그저 승승장구한다 올라가면 반드시 이런 일을 겪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다윗이 이 죄를 오픈했기에 우리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부유할 때는 인간에 대해 모릅니다. 죄에 대해 모른다는 거예요. 사람에 대한 분별 되지 않습니다. 결국은 언젠가 빵 터지게 돼있습니다. 죄를 모르면 인간 모르는데 결혼인들 제대로 하고 직장인들 사람 제대로 뽑겠습니까? 스펙으로 뽑는게 아닙니다. 결혼하는 게아닙니다. 그러나 다윗도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걸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 갑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것보다 그분과의 관계에 관심있으십니다. 우리가 잘나서 우릴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전함을 가진 우리 자신이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가장 큰 초점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건강할 수록 더욱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성숙은요 더 나은 행동이 아니고 나쁜 행동을 식별하고 인정하는 능력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그렇게 더 나은 행동으로 살겠어요. 나쁜 행동이 나 더 분별하세요. 가지 않아야 할 곳, 하지 말아야 할 말. 그것이 분별이고 구별된 것입니다. 작든 크든 나의 연약함을 나의 현실이라고 인정하고 또 인정하는 것이 회개의 생활 방식입니다. 

 

우리들교회가 목장에서 날마다 자기 죄를 고백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오늘 본문에 그대로. 큐티인의 한 간증을 보니까 이 집사님이 시댁 식구들로부터 악질이라고 공격을 당하고 있는 거예요 어느 날 보니 중학생 자기 아들이 왕따. 순간적으로 이제 동질감이 느껴서 너는 병신같이 당하고만 사냐 하고 아들에게 비난 분노 쏟아냈는데 그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향한 비난과 분노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긍 아들은 계속적 왕따 당하고 있으니까 엄마가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계속되는 거예요. 지금은 이 일의 가해자가 엄마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엎드려 울고 회개할 수빡에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아픈 아들을 위해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기억하며 머물러 꺠어 기도하겠습니다. 라는 이분의 고백을 우리가 듣기만 해도 상한 마음의 제사를 드린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녀가 바로 나이지 않습니까? 자녀가 계속 왕따를 당하기에 이분이 저절로 상한 마음의 제사가 되어 딱 여기 정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감사해요. 

 

적용질문

나는 모든 지적에 대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옳소이다다가 되고 있습니까?

나의 회개는 밧세바 이전입니까 이후입니까 나의 회개는 나를 위한 고백입니까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고백입니까? 

 

두번쨰는 죄는 반드시 징벌하십니다. 

14절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우리가 죄를 쉽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는 그 값을 치뤄야 한다는 생각보다도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다 용서해주신다 이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죄를 쉽게 생각합니다. 사함 받은 죄라도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기 때문에 책임 물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사하시고 책임을 묻는 것이 두렵다면 아직 죄사함의 은총을 모르는 것입니다. 

 

결국 다윗의 넘어짐은 원수들에게 기회. 하나님은 다윗이 제대로 넘어지도록 방치하셨어요 다윗에겐 사실 폭력성 있습니다.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 양피 백 개 사울이 가져오라 했는데 자기 결혼 위해 양피 200개 가져다 바쳐 무고한 백성 200명 죽였습니다. 도덕적으로 말하면 다윗은 이미 살인자 예요. 원치 않았겠지만 간음에 의해 진짜 문자적으로 살인을 했습니다. 가임 기간 피해 그렇게 치밀히 간음 했는데 임신 됐어요. 이건 완전히 마귀 기적 아니고 뭡니까. 마귀도 이렇게 기적. 우리야에게 두번씩이나 동침하라고 했는데 충신 우리야가 그걸 안햇어요. 또 하나님이 그 때도 다윗을 방치하셨어요. 우리야가 그렇게 죽을 게 아닌데 전쟁터에서 너무 쉽게 죽어버렸어요. 일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 다윗 조차도 생각치 못했고 권세 갖고 저절로 저절로 흘러갔어요. 원수 비방거리를 주었지만 하나님이 글쎄 두고 보셨어요. 그래서 다윗은 하는 일마다 꼬였어요 이떄. 

 

여러분도? 하나님이 지금 방치하시고 계시네요. 뭘 회개해야 할까요. 회개하셔야지 사람 미워하면 안돼요 하나님이 방치하고 계십니다. 회개하라고. 세월호 사건은 사람이 위기 당할 때 얼마나 위험한 선택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네덜란드 선장 운행 지체되면 무서운 처벌 당하리란 생각에 허가 없이 비상 창륙, 기존의 손실과 비교도 안되는 584명의 목숨 잃었어요. 근데 하나님이 두고 보셨어요. 결국 하나님은 다윗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크게 채찍 드셨어요. 나단이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징벌을 예견했습니다. 후에 자신의 잘못으로 원수가 자신을 이길 수 있구나 구속사가 끊어질 뻔 했구나 후에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중요하게 쓰임을 받는 사람일수록 다윗에게 하신 이 책망 곱씹어봐야. 

 

날마다 하나님의 종이 당하기 얼마나 쉬운지 몰라요. 악한 세상에서 멀쩡히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소경이 잘 걸어가는 이 세상에서 매일 넘어지면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15절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들을 여호와께서 치매 심히 앓더라.

 

그러나 예고된 고난은 아무 준비 없이 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린 말씀으로 날마다 예방주사. 하나님 영광 위한 고난 있고 하나님이 치시는 고난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만 해도 택자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고난 경고 했는데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대요. 죽지 않고. 복음을 전할 때도 아이고 오늘 나 죽었구나.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저 있잖아요. 너무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다윗에겐 어쩌면 이렇게 죄 지을 때는 충신인 우리아가 있어서 더욱 죄를 짓도록. 불을 때주고 회개할 때는 나단 있어요. 정확히 다윗 도울 사람 때마다 있네요. 어떻게 때마다 믿음의 동역자가 있을 수 있는지 하나님은 방치하며 또 지체 붙여주시는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징벌에 따른 죄의 대가를 치룬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 "이건 내 삶의 결론이야" 그게 치루는 거예요.)

여러분에게는 이  징벌의 때에 신뢰하는 믿음의 동역자가 있습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결혼 생활 힘들어도요. 다 이렇게 동역자가 없어서 다 이혼하는 거예요. 지체 없어서 이혼하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기 떄문에 아무리 목장에 인도하려 해도 싫다 그래요. 남편만 돌아오고 아내만 돌아오래요. 그러니까 매력 없어서 안돌아와요. 홀로 서기를 해야되는데 그냥 공동체도 싫고 남편만 아내만 돌아오래요. 여러분 도와줄 수 있는 지체가 없기 떄문에 결혼 생활이 깨지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회개 세 번째는 징벌을 순종합니다. 

죄를 징벌하신다면 순종해야 하죠. 세 가지로 다윗이 무엇에 순종하는 지를. 첫 째로 현실을 수용합니다. 16,17절 오늘 본문이 많지만 그래도 읽어야 돼요 이게 회개의 단계기 때문.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 금식 방에 들어가 밤새도록 땅에 들어갔으니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니라.

 

형벌이니 아이 가만히 둔다는 것은 형벌에 대한 태도 아닙니다. 아이 위해 마지막까지 금식하며 기도했어요. 자기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자격조차 없다는 것 깨달았지만 밤새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신실한 신하들이 말렸지만 지도자는 누구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이 죄악때문에 먹지도 않고 이렇게 기도. 결국 하나님 말씀대로 아이 심히 아프게 됩니다. 다윗 이미 나단 선지자 통해 그 사실 들었지만 포기치 않고 하나님께 자비를 간구했습니다. 

 

18절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 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죽은 것을 아뢸 수 있으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예. 다윗이 그렇게 기도했어도 이제 아이가 죽었어요.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런데 옆 사람들이 다윗이 그렇게 살려달라 기도하고 부르짖었는데 무슨 말 해야할 지모른다고 합니다. 그들은 저 왕이 상심해서 어쩌나만 생각합니다. 

 

19절입니다.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 꺠닫고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신하들이 다 수군거렸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는데 아이가 죽었대 참 안됐어 그럽니다. 저도 남편이 갔을 때 제가 30대에 과부였으니, 사람들이 아이고 징벌 받았나보다 참 안됐다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실제로 어떤 나이 많이 드신 분이 수군거리다가 용기있게 제게 오셔서 아이고 무슨 죄를 지셨노 저한테 물으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살아있습니다. 하하. 

 

징벌의 순종하는 것 두번째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요 현실을 수용하게 됩니다. 20절 다윗 일어나 몸 씻고 기름 의복 여호와의 전 들어가서 경배 왕궁 돌아와 음식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다윗은 아이가 죽은 것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몸을 씻고 기름 바르고 의복 갈아입고 하나님을 경배.

 

21~23. 그의 신하들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떄 금식 울더니 죽은 후에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됨이니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는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 지금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다윗은 회개 후 확신의 모습 보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 알게된 다윗은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라며 아이는 천국에 갔음을 확신했습니다. 영아 구원의 확신에 대한 근거 구절이 바로 이거예요. 이거 기억해 두시길 바라요. 영아. 아기들이 죽어도 천국 가냐. 예. 천국 갔다고 돼있네요. 걔네들이 무슨 말 할줄도 모르고. 아빠가 부모가 위해서 기도했을 떄 천국 갔다고 돼있습니다. 

 

아이의 죽음으로 다윗이 더 절망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제 다윗은 여호와께 예배 드리고 집에 돌아와 음식 먹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기 떄문입니다. 다윗이 아이가 천국에 간 것을 신뢰한 것 처럼 말이죠. 저도 남편이 갔어도 그것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았죠. 왜냐면 천국 간 것을 믿었기 떄문에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일어나서. 그날 아침까지 그렇게 눈물로 기도했는데 구원 받고 갔기 떄문에 얼마나 기쁨인가 하면 30년을 이렇게 오겠어요. 그 사람이 진짜 천국갔나는 유가족 태도 보면 알 수 있어요. 천국 간게 너무 대단해 제가 이렇게 삼십년을 과부로 살고 있어요 할렐 놀렐루야 왜냐면 저는 과부처럼 안생겼기 때문에 산다는 게 하나님의 은혜인 거예요 진짜 하나님 신뢰함으로 남편 천국 간 거를 너무 확신하기 때문에 일어나서 사명을 향해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자 징벌을 순종하는 자 세번째는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24절 5절. 다잇이 밧세바 위로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꼐서 그를 사랑하사 나단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사무엘하 11장 3절 다윗이 사람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이랬잖아요. 그때는 밧세바를 보고 우리아의 아내라고 했어요. 근데 다윗이 회개하고 나니까 그녀를 다윗의 아내라고 불러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윗이 밧세바가 임신했을 떄는 우리아의 아내였어요. 다윗의 간통 죄 결과 생긴 아이는 죄악의 씨잖아요. 본문에서는 우리아 아내 아닌 다윗의 아내 즉 다윗이 낳은 아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 아일 치셨어요. 죄는 용서, 다윗은 그 죄의 값을 치뤄야 했습니다. 징계로 아이가 죽자 밧세바 위로했습니다. 이 세상에 밧세바처럼 정죄감 큰 사람 어디? 자기로 인해 훌륭한 남편, 아이 죽고 남편 살해한 다윗과 지금 살고 있습니다. 이세상에 밧세바를 위로해줄 사람은 오직 다윗 밖에 없습니다. 밧세바는 지금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 하고 있는 여인이기 때문에. 미갈은 죽을 떄까지 아이 없었다고 했어요. 다윗이 동침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예. 이렇게 죄를 범한 밧세바를 다윗은 위로하고 동침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결국 진정한 회개 한 다윗이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이 사랑한 여자들 중에는 미가엘과 아비가엘 밧세바 있는데요 이 세 사람의 사랑은 스토리 있습니다. 스토리의 주인공이 밧세바 이후 나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 다윗은 밧세바에게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밧세바는 자기 이름은 아니지만 마태복음 1장에 우리아의 아내로 다윗과 같이 찬란하게 구속사 명단에 들어갔습니다. 밧세바가 다윗과 서로 같은 사랑 했음으로 보입니다. 땅끝까지 내려간 두 남녀이기에 다윗이 밧세바를 책임진것이고 밧세바도 구속사를 통렬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다윗의 아내가 그리도 많은데 가장 비참한 환경 가운데 있었던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이라는 영적 후사 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부 간에도 아가페 가능하다는 것을 여자 중독자인 다윗이 이 사건 통해 알게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예. 두번 들으시니 안어렵죠? 

 

적용질문

나는 징벌에 순종합니까? 현실을 수용합니까? 내 사건에서 하나님 신뢰하십니까?

이렇게 정말 정죄받아야 될 그 누군가를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정죄감이 큰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야 되겠습니까?

 

나를 살리는 회개 네 번째는 회개의 결론은 거룩입니다. 

26~31절. 중요한 거니까 잘 들으세요. 요압이 암몬 자손 랍바 쳐 그 왕성 점령 요압이 전령 다윗에게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읍 점령 이제 왕은 그 백성 남은 군사 모아 그 성에 진 치고 이 성읍 점령하소서 내가 점령하면 이 성읍이 내 이름이로 일컬음 받을까 두려워 하나니 다윗이 모든 군사 모랍바로 가서 쳐서 점령하고 왕의 머리에서 왕관 가져오니 중량이 금 한 달라늩라 다윗이 자기의 머리에 쓰니라 노략한 물건 무수히 내오고 그 안에 있는 백성들 톱질 써레질 철도끼질 그들에게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 모든 성읍 이같이 하고 모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이 사건은요 솔로몬을 낳기 전의 사건입니다. 다윗이 회개했기 때문에 암몬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 아니고 죄를 짓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암몬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먼저 다윗 왕국 견고히 한 후에 강권적으로 다윗 회개하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 자격 없으나 언약 지키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런 주님 보고 전률하고 통회 자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데도 전쟁 이기게 해주시는 거예요. 죄를 짓는데 회사 승진하고 아이들이 잘나가고 있다면 근심해야 합니다. 다윗이 이런 기가막힌 죄를 짓고 있는데도 기가막힌 영원한 적암몬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었다는 것이죠. 굉장히 중요한 메세지. 

 

요압이 또 등장합니다. 요압은 이미 우리아 사건 다 알고 있는 데다가 무술에 능하고 성경 말씀도 적재 적소에. 게다가 다윗에게 랍바 바치며 내가 다 이겨놓았는데 내가 영광 받을까 걱정이래서 나가서 마지막 도장 찍으시고 보석 왕관은 다윗이 쓰라고 이런 충신 어딨겠어요. 그에게는 반역의 냄새가 있었지만 지금 그는 다윗에게 인간적으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요압은 음부에 떨어졌어요. 얼마나 잘했으면 다윗 같은 자가 요압에게 속았겠습니까? 오늘같은 회개가 나오지 않는 다윗은 회개의 분량이 적기에 죄를 그만큼 모르고 분별이 안되니 요압같은 자에게 속습니다. 결국 요압은 택자가 아닙니다. 택자 아닌 요압에게 일생 끌려다니며 얼마나 전전긍긍했겠습니까? 내가 왜 저놈에게 우리아 죽이라고 했을까 땅 치고 통곡 해도 쥐도 새도 모르게 할 뻔 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다윗이. 그때는 회개를 몰랐기 때문이에요. 얼마나 후회를 했겠습니까. 솔로몬 시대에. 자기가 죽이지 못하고 죽이라고 유언하고 가요. 무서운 부하가 있어요 이렇게. 그래서 일생 요압이 다윗의 부하인 것 같아도 다윗이 일생 끌려다녔어요. 눈물흘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자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거예요. 다윗은 그냥 척척 죽일 수도 없잖아요. 하나님의 사람이니까. 

 

여기서 우린 무엇을 생각할 수 있? 다윗은 범죄 기간에도 암몬 잘 무찔렀습니다. 노역 하게 했는데, 한 마디로 전도, 선교도 구제도 많이 했습니다. 아무리 싸움 잘하고 어마어마한 돈 벌었다고 할지라도 12장 전체는 죄와 수치에 관한 심각한 얘기를 다루고 있는데 맨 마지막 암몬 이야기 몇 절을 갖다 붙인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암몬 이긴 사실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독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함.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의 순종과 성결. 외적 열매 많아도 내적 거룩 없으면 끝입니다. 다윗 비록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겼지만 실질적 싸움에서 졌단 것입니다. 이게 암몬 이야기가 뒤에 붙어있는 이유입니다. 

 

제가 목회자 세미나 인도하며 제가 뭐가 돼서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뭔갈 또 세미나 하며 두려움 몰려옵니다. 건물 지어지고 사람 많아지고 제 말 영향력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제가 거룩하지 못한 것 같아 회개 됐습니다. 뭔가 된 것 같은 헌당 예배 떄 제가 너무 두려워서 거룩하지 못한 것 때문에 그날 너무나도 상당히 많은 애통의 눈물 흘렸습니다. 이번에도 많은 눈물을 흘렸어요. 예외 없이 해야하는 이번 주 본문이 예목 주제별 나오는 이 본문이 나를 살리는 회개인 거예요. 다윗의 회개 보면 다시 옷깃 여밀 수밖에. 제가 할 것은 역시 회개 뿐. 늘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두렵고 떨린것. 우리 교회가 회개하고 가는 게 맞는데 전하는 게 너무 두렵고 너네만 회개하냐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그렇게 회개 하고 있나? 생각하면 자신 없고 늘 황송하고 떨리고 그러니 늘 또 회개 해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로버트 머레인 매케인 목사 "나의 성도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어떤 것도 아니고 나의 개인적인 성결"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맞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살리기 위해 제가 성결한 것 밖에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역시 나를 살리는 것은 회개 밖에 없습니다.

 

적용질문

여러분 회개 결론은 행복? 거룩? 

 

공동체 고백입니다.

이 분은 남편의 바람 피우고 남편이 바람피우고 감옥에 간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분의 똑똑하고 훌륭한 남편이 돌아오셔서 목자로 잘 섬기셨는데 또다시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몇 년을 안돌아오고 있습니다. 아들들도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 모릅니다. 병원에 갔다 가출했다 나왔다 들어갔다 돌아온 것 같으면 또 속 썩이고 다시 때문에 돌아버립니다. 남편 감옥 갈 때는 부목자엿는데 그 땐 네 가족 이상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니 폭풍 성장, 평원지기 됐습니다. 남편 잘 나가면 아무 직분 없다 감옥 가고 계속 밖으로 도니까. 포로 생활 기간 동안 다른 방법 안 찾고 질서에 순종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질서로 나를 풀어주실 거예요. 그냥 있을 때 생각나지 않다가 포로로 끌려가니 온갖 죄가 생각납니다. 남편 바람 났을 때 공동체 무시한 걸 회개했다고 했어요. 서울대 부자여서 굉장히 공동체 무시했었습니다. 회개하고 나서 지체 의식 생기고 강자로 걸어가는 것 아닌 같이 함께 하는 구조라는 것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이전엔 받기도 주기도 싫었고 여유 있으면 도와주는 정도. 그런데 지체 의식이 생긴 후 받는 것 주는 것 자유로워짐. 포로는 한정된 기간. 길어봐야 여기서 사는 것은 인생의 잠깐.

 

현재 묶여있는 작은 사건 통해 풀어주시는 경험 해야 천국 맛볼 수 있습니다. 목장예배에서 이렇게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 은혜받는 지 모릅니다. 이 분은 남편이 바람, 감옥, 떠나도, 자식이 속 썩여도 회개합니다. 오직 예배 중수하니 모든 일 중에서 내적 성전 얼마나 강력히 세워지고 있는지 이 분을 보면 나를 살리는 회개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환경보단 회개하며 살아갈 때 평강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누구보다 아름다운 미소 짓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 맺습니다. 나를 살리는 회개는 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하는 죄고백이 있습니다. 나의 회개가 밧세바 이전인가 이후인가 생각해보시고 하나님은 회개 하셔도 반드시 징벌하시고 순종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현실을 수용, 하나님 수용, 진정한 사랑 하게 됩니다. 회개의 결론은 거룩입니다. 예수 믿고도 정죄감 큰 사람 있다면 위로하시길 바랍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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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점

 

1.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외치던 지난 날들이 있었다. 오늘 삼위의 하나님이 믿어지기 위해서는 백프로 죄인인 나를 살리심이 믿어져야 한다고 하시고, 그것을 위해 나를 살리는 회개를 해야한다고 하신다. 그 예시로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우리아가 전쟁통에 죽게 만든 다윗의 간통, 살인의 죄를 다루신다.

 

스스로 하나님 되고자 하는 것이 죄의 본질, 참 지식의 시작은 내가 죄인이라는 걸 아는 것이라고 하신다. 구속사의 중심부를 꿰뚫는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다. 이전엔 내가 구속사를 안다고 자부하며 교만했다. 아버지의 주사 고난으로 10대를 전부 보냈는데, 그 속에서 살아나며 살기위해 큐티 했기 때문에, 술 마시는 아빠가 너무 싫어서 술, 담배도 안하고 엄마와 큐티하는 모범생으로 살았기 때문에 내가 구속사를 다 깨우친냥 살았다. 그렇지만 그 속에 내가 죄인이라는 참 지식이 아닌 스스로 하나님 되고자, 드러나고자 하는 죄의 본질이 가득 차 있었다.

 

"다윗이 깨달은 것은 스스로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물처럼 먹고 마실 수 밖에 없는 죄인이며 모태에서부터 죄악중에 출생했으며 죄밖에 지을 것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단 거예요. 여러분 이게 회개입니다. 내가 죄악중에 잉태할 수밖에 없는 걸 아는게 회개입니다."

 

그런 내가 27살이 된 지금 벌인 것은 공동체의 모든 처방을 뒤로 한채, 목사님과 손가락 걸고 한 약속과 두 번의 각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채 음란의 죄를 범한 것이었다. 그렇게 치리를 받고 치리 기간을 지나고 있다. 그렇게 예배당에 앉게 되니 지금껏 내 의가 득실하여 예배당에 의인으로 앉아 있었다는 것이 깨달아져 처음으로 예배당에 죄인으로 앉아있게 됐다. 회개의 시작이었다.

 

고든도 다윗도 최고의 자리에서 죄를 범했다고 한다. 이것이 인간론이고 구속사이고 본질이라고 하신다. 구조적으로, 환경적으로 죄짓지 않을 수 있던 지난 날을, 잘못된 인간론을 뒤로 한 채 내 피부로 죄와 호흡하며 배워간다. 밧세바 사건을 통해 분수령적인 회개를 한 다윗의 전, 후가 나뉜 것과 같이 나 또한 27살 음란의 죄로 전과 후과 나뉘었다.

 

2.

죄 사함에도 죄는 반드시 징벌하신다. 근데 여기에 덧붙는 게 하나님이 내버려 두셨다는 것이다. 음란의 과정동안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큐티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공동체에 끊임없이 붙어갔고 나누었고 기도하며 부르짖었다. 그럼에도 죄와 싸워 이기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다고 느꼈다. 

 

"다윗에겐 어쩌면 이렇게 죄 지을 때는 충신인 우리아가 있어서 더욱 죄를 짓도록. 불을 때주고 회개할 때는 나단 있어요. 정확히 다윗 도울 사람 때마다 있네요. 어떻게 때마다 믿음의 동역자가 있을 수 있는지 하나님은 방치하며 또 지체 붙여주시는 줄 믿습니다."

 

방치하심도 사랑이라고 말씀하신다. 치리받고 매일이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지체를 붙여주신다. 아웃리치를 가서 만난 형 두명, 그리고 자신의 처절한 고난 가운데서도 연락 한 번이면 카톡해주고 전화해주고 시간을 내어주는 하나님이 정말 붙여 주셨다고 생각되는 형까지.

 

3.

오늘 설교를 크게 요약해 보겠다.

"죄고백 - 징벌 - 순종 - 거룩" 이다.

여기서 "순종" 파트는 또 다시 쪼개어 우리에게 말씀을 떠먹여 주신다.

"수용 - 신뢰 - 사랑"

 

음란의 죄를 범한 처음, 그리고 뒤로 "망했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러나 그곳엔 하나님의 섭리가 자리했음을 깨닫는다. 죄고백으로 공동체에 나누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치리 기간을 지나지만, 거기서 순종의 때를 잘 지난다면 다시 거룩하다 인쳐주시는 것이다.

 

순종은 먼저, 현실을 수용해야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한다. 그렇게 진정한 사랑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다윗은 밧세바에게 정착했다고 한다. 우리 모두의 큰 관심사다. "내게 주신 돕는 베필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어요 하나님?" 여기서 힌트를 얻어간다.

죄 가운데 사는 우리가 죄고백을 하고 징벌을 받음에도 현실을 수용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결국 사랑의 본질되신, 진정한 사랑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그 때 내 옆에 남아있는 한 사람을, 붙여주신 한 사람을 봐야 한다. 순종의 과정을 함께 겪은 그 사람이 바로 버리지 말아야 할, 떠나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렇게 밧세바에 정착한 다윗이다. 내게도 이런 순종이 있길 원한다.

 

4, 

행복보다 거룩이 우선 돼 있는가.

이번 추석을 맞아 아빠와 엄마와 시간을 오래 보내게 됐다. 한 공간에서 호흡하고 있으니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다. "왜 저렇게 잔소리 하지?", "저렇게 해서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너무 사랑이 없다"

오늘 외적 성공, 암몬과의 싸움에서의 성공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하신다. 결국 내적인 승리, 내 죄고백에서부터 거룩까지의 과정을 이뤄내야 한다고 하신다. 그 모든 과정은 내가 치루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때론 방치하시기도 하시고 지체를 붙여주시기도 한다고 하신다.

그래서 여전히 변치 않는 내 가족, 그리고 내 죄인된 본성, 하나님 되려 함, 엄마와 아빠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내가 더 악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회개하며 이번 추석 예배 시간 아빠의 세속사 적인 설교가 또 들려올까 두렵지만 잘 듣고 웃으며 예배드리는 그런 하나님 기뻐하시는 명절이 되길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구원의 화살을 쏘는 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