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사역자설교] 수요 큐티예배 | 느헤미야 12:27-47 - 김정태 목사 / 이숙자 초원지기 | 2024.08.28

햄스트링 2024. 9. 16. 22:40

27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28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서 모여들고

29 또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웻 들에서 모여들었으니 이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마을들을 이루었음이라

3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31 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을 성벽 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둘로 나누어 성벽 위로 대오를 지어 가게 하였는데 한 무리는 오른쪽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 하니

32 그들의 뒤를 따르는 자는 호세야와 유다 지도자의 절반이요

33 또 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과

34 유다와 베냐민과 스마야와 예레미야이며

35 또 제사장들의 자손 몇 사람이 나팔을 잡았으니 요나단의 아들 스마야의 손자 맛다냐의 증손 미가야의 현손 삭굴의 오대 손 아삽의 육대 손 스가랴와

36 그의 형제들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37 샘문으로 전진하여 성벽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다윗 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다윗의 궁 윗 길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38 감사 찬송하는 다른 무리는 왼쪽으로 행진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과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벽 위로 가서 화덕 망대 윗 길로 성벽 넓은 곳에 이르고

39 에브라임 문 위로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 양문에 이르러 감옥 문에 멈추매

40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무리가 하나님의 전에 섰고 또 나와 민장의 절반도 함께 하였고

41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42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43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44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

45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명령을 따라 행하였으니

46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지도자가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47 스룹바벨 때와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되 그들이 성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성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느헤미야의 성벽 봉헌 - 김정태 목사

 

오늘 본문은 성벽 중수를 마치고 낙성식으로 봉헌하는 시간입니다. 얼마나 많은 방해와 핍박이 있었습니까. 끝까지 인내하여 성벽 재건을 완성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많은 사람과 환경이 주변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벽 재건을 결코 멈춰서는 안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보잘것 없는 삶도 적용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것 믿습니다.

 

하나님께 봉헌되어지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1.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7절.

이스라엘 백성은 느헤미야 주도 하에 외적 산발랏 도비야 방해 내적 빈부격차 있었지만, 말씀으로 중심 잡는 한 사람으로 인해 52일만에 성벽 중수가 완성됐습니다. 공동체에서도 가정에서도 말씀 들리는 그 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죠.

 

우리들교회도 구속사 말씀으로 믿고 살고 누리는 이런 공동체는 유일할 것으로 믿어요.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말씀이 들리는 그 한 사람 담임 목사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가정 또한 말씀 들리는 나 한 사람으로 중수될 줄 믿습니다.

 

28절.

노래하는 자들 모여 마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다 잃고 흩어져 살다 성벽 중수되니 다시 모여 비파와 수금으로 하나님을 노래하는 사명 감당함을 보게 됩니다. 우리 또한 술과 죄로 무너진 삶이 많이 있습니다. 내 가족도 내 삶도 하나님 앞에서 다시 찬양하는 귀한 은혜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때까지 정결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30절.

정결케 하는 데엔 순서 있습니다. 제사장 - 백성 - 성문 - 성벽. 내 가족 거룩케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정결케 돼야 됩니다. 우리 가족 앞에서, 안 믿는 자녀들 앞에서 내 죄를 보고 내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결은 다른 것 아닌 내가 하나님 앞에 100%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가는 것입니다.

 

삶은 레고 블럭과도 같습니다. 겉 포장지는 정말 멋진 자동차 있지만 뜯어보면 수백개 블록, 설명서 있어요. 설명서대로 가다보면 자동차 완성됩니다. 실수하면? 뜯어서 다시 고치는 거예요. 우리 인생의 설명서 되는 하나님 말씀, 큐티 말씀 하루하루 잘 조립해야 돼요.

 

적용질문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예배와 목장을 가고 있습니까?
나의 시간과 노력을 즐거이 봉헌하고 있습니까?

가족을 구원을 위해 정결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2. 삶으로 보여줘야 됩니다.

31절.

느헤미야가 유다 방백과 찬송하는 자들 성벽 위에서 행진하게 했는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찬양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도비야가 여우가 와도 무너질 것이라고 조롱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아래 성벽이 얼마나 견고히 지어졌는지 선포하는 거예요. 믿음의 사람 별거 없습니다.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나가는지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찬양하는 무리가 오른쪽 왼쪽 나뉘어 행진 했다 합니다. 어느 한 편에서만 하나님 찬양 진행되는 게 아닙니다. 오른 편 - 가정, 왼 편 - 직장. 오른 편 - 내 영혼. 왼 편 - 내 육체.

 

첫 번째 행렬은 분문을 향해 가게 됩니다. 분문은 짐승들의 배설물, 쓰레기가 행하는 곳이에요. 사람들은 다 죄 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내 죄가 짐슬들의 배설물보다 더하다는 것을 마주하고 회개하며 가야 합니다. 그럴 때 분문을 통과하여 사명이 있는 샘문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 생활의 시작이고 가족 구원의 시작임을 알아야 해요.

 

누구나 피하고 싶은 죄, 보고 싶은 배설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 보시며 체휼해주시고 안아주시고 용서해주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고백하며 가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직면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괜찮은 죄인 말고 용서받는 죄인 돼야 할 줄 믿습니다.

 

38절.

총독임에도 제사장 뒤에 따라갑니다. 질서를 지키는거죠. 하나님께 충성은 가장 앞서, 예배와 영광 돌릴 떄는 스스로 낮추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 행렬은 감옥문까지 이르게 됩니다. 우리 모두 사건 고난 아픔에 갇혀있는 자들입니다. 죄와 중독에 갇혀있는 자들이에요. 그렇기 떄문에 내 힘과 노력 아닌 갇힌 환경대로 인내하며 회개하며 가야합니다. 그러다보면 포로생활 70년 차고 귀환하는 것처럼 때가 차면 회복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두 무리는 결국 하나님의 성전에 도착합니다. 우리 인생의 도착지도 결국 하나님의 앞이에요. 돈 성공 행복의 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배우자 자녀 고난의 문을 거쳐 말씀으로 해석받고 가야 합니다. 그리 할 때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우리에게 큰 즐거움 준다고 하세요.

 

43절.

짧은 구절에 즐거움과 관련된 말이 네 번이나 나와요. 원문 보면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 하게 하셨다 하는데 원 뜻은 하나님이 큰 기쁨으로 즐거워 하게 했다는 거예요. 말씀 잘 보면 하나님이 즐거워 하게 했다는 거예요. 무리가 먼저 즐거워 하며 예배 했더니 더 큰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그 즐거움이 제사장 무리에서 어린 아이에게까지 이어지고 예루살렘 멀리까지 들리게 됐다는 거예요.

 

내가 먼저 즐거워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즐거워 하며 하나님 말씀 들고 가다보면 그 기쁨을 더 큰 기쁨과 감격으로 채워 주신다는 거예요. 내가 예배, 목장 자리마다 하나님꼐서 예비해두신 은혜와 회복이 있는 거예요.

 

목사님 간증

몇 달 전, 큰아들과 심한 다툼. 100프로 수시 붙을거니까 학교 안가겠다. 답답. 큰 싸움으로 번져 아들이 무시하는 말을 하는 거예요. 아빠도 공부 못했잖아! 그래서 제가 나는 공부 못한 거 아니다. 할 필요성이 없어서 안한거다. 인정을 안하는 거예요. 아들이 말하는 게 아빠 나랑 맞짱뜨자 이러는 거예요. 간신히 잡던 이성 놓치고 눈이 돌아버리니까 아들이 지금 말고 나중에 싸우자. 

 

아들 너무 미웠습니다. 늦게까지 공부하고 오면 보고 싶지 않아서 자는 척 해요. 요아스에게 회개하라고 한 스가랴 돌로 쳐 죽인 것처럼 아들 스가랴를 돌로 친 것이 인정이 돼서 회개가 됐습니다. 다투고 난 며칠 뒤부터 아들 태도가 약간 바뀌었고 좋아졌어요. 알고 보니까 아들과 싸우기 전에 아들한테 편지를 썼어요. 싸우고 나서 며칠 뒤에 근데 그게 온거예요. 그렇게 사이 좋게 지냅니다.

 

적용질문

나를 기어오르는 사람에게 잘 죽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는 예배의 즐거움이 가득합니까? 아니면 날선 비판과 판단, 정죄, 혈기가 가득합니까?

가족이나 직장 동료 공동체 지체에게 삶으로 보여주지 못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써야 합니다.

44절.

그동안 하지 못한 십일조를 드립니다. 하나님과 관계 회복되니 물질과 관계가 회복되는 거예요. 세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워지지 않는 한 다른 두 관계는 불완전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나의 죄를 알게 되고 인간과 물질을 알게 돼 비로소 통찰력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예배 관계가 세워지지 않으면 십일조를 할 수가 없고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없습니다. 십일조는 그래서 신앙 고백이에요.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가정으로 세워지려면 가정 경제, 부부 관계가 아니라 예배가 먼저 회복돼야 하는 거예요.

 

45절.

예배 회복 - 하나님 섬기는 일을 우리 가정이 하게 됨. 

 

적용질문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에 힘을 쓰고 있습니까?

십일조를 기쁜 마음으로 하십니까? 아니면 아까운 마음으로 하십니까?

나는 현장예배의 회복이 잘 되었습니까?

 


 

느헤미야의 성벽 봉헌 - 이숙자 초원지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선민들을 외부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예루살렘 성읍 성벽 봉헌식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교회를 항상 세상의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키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낙성식을 드디어 거행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성전도 아닌 성벽 낙성식을 거행한 적 없었는데,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성벽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성벽 봉헌식에 참여하려면-

 

1. 내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27절, 30절.

봉헌식 집례 제사장 레위인 먼저 정결식. 회개하는 모습 보일 때 백성도 회계. 정결례 행해야 함. 집에서 부모 먼저 회개해야 자녀 회개. 자기 죄를 아는 만큼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집사님 간증.

믿지 않을 때 결혼, 혼자 20년간 신앙생활, 올해 5월부터 남편도 함께. 남편은 순기능 가정에서 살았고 부모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성실히 살아 대가를 받았다 생각했기에 자신의 능력을 믿고 부모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 남편을 불쌍히 여기고 제사장 역할 해야 함에도, 내 죄가 깨달아 지지 않으니 회계의 정결례 행하지 못하고 남편을 무시 정죄했습니다. 30절 늘 정결례 행하는 가정 돼라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2. 질서대로 각자의 역할에 순종하 행진해야 합니다.

30~43절.

구원의 여정 분문이 있고 - 샘문으로 가고. 강같은 평화의 수문 거쳐 영적 분별력 생기는 망대에 이르고 감옥문에 멈춥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인생이기에 감옥문에서 멈춥니다. 

 

제 기억의 시작은 부모님 다투시는 모습 무력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부모님의 전쟁같은 상황 받아내야 했습니다. 아버님은 술을 즐기셔서 늦게 귀가. 엄마는 고된 시집살이 농사일로 끝없는 잔소리. 아버지는 폭력 행하고 집안은 엄마의 탄식 소리 끊이지 않았습니다. 슬픈 엄마에 착한 딸 되고자 애를 씀. 그러나 돌아오는 건 책망의 말들.

 

국민학교 저학년 몇 년간 교회 다니며 찬송가 배우며 즐거웠던 날들은 제 상황을 잊을 수 있는 날들이었습니다. 택자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방 여고 졸업, 청년의 때에 서울 대학 다니던 두 명의 오빠와 함께 살게 됐습니다. 부모님은 세 명의 학비 용돈 생활비 매달 보낼 만큼 경제적 부족 없었지만 유교 문화에서 자란 그 시대 딸에 대한 인식이, 희생과 헌신 당연했고 학업과 살림 도맡아 했습니다. 어떤 도움도 오빠들은 주지 않아 너무 힘들었습니다. 부모 기대 소망 저버릴 수 없어 참고 인격 없는 종으로 살았습니다. 오빠들 원수처럼 여겼습니다. 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까지 뒷바라지 하다 같이 산지 만 7년 채우고 나서야 오빠 준비 시험 합격하고 뒷바라지 끝났습니다.

 

기쁨도 있었지만 억울함 가득한 채로 청년 마무리 됐습니다. 주님은 이땅에 소망이 없음 알게 하시려고 분문으로 가시게 하시고 인생의 감옥 경험케 하신 것 같습니다.

 

43절 즐거워 했다는 말이 네 번이나. 연약한 사람들이 즐거워 하는 소문이 멀리까지 퍼지는 목장 교회가 돼야 겠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즐거워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기쁘게 하셔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기쁨 우리 모두에게 있길 원합니다.

 

오빠들보다 더 잘 사는 게 오빠들에게 원수 갚는 것으로 생각해 대기업 다니던 효자 남편과 결혼 했습니다. 남편의 부모 우상 신앙과 같아 늘 부모님의 필요를 채워주는 희생을 저에게 요구했습니다. 주말마다 시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돌아오는 시간 보냈습니다. 상처 해결 되지 않은 채로 결핍 더해가니 늘 공허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전도 받았고 초심자였지만 너무 갈급해 새벽 예배 까지 다니며 하나님 계심을 증명해주시면 믿겠다 했는데 새벽에 성령 받고 지독한 허무 사라지게 됐습니다.

 

3. 십일조 신앙 고백이 돼야 합니다.

44절.

백성들이 너무 즐거워 십일조 곳간에 쌓았다 합니다. 그러니 헌금은 예배 회복 후 즐거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45,46절.

하나님 자체를 기뻐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사하는 지도자가 최고의 지도자라 하십니다.

 

47절.

온전한 십일조 바쳐 제사장 레위인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첫 사랑으로 월급 십일조 잘 드리게 됐습니다. 그러나 월급 외의 것까지 온전한 십일조 드리기까진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의 시간을 부모 형제를 위해 썼다는 것이 내 의가 되어 늘 괜찮은 죄인이라 여겼습니다. 우리교회 온 해에 매주 회개 세례 외치시는 목사님 통해 내가 100% 죄인임을 깨닫게 된 후 즐거이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하나님 자체를 즐거워 하는 지도자 통해 온전한 십일조가 회복된 것입니다.

 

자녀도 욕심으로 키웠습니다. 자녀가 고학년에 주님 만나니 국제 기구 가서 주님 높이라며 야망을 믿음으로 포장해 열심 냈습니다. 내가 산 어둡고 우울하고 침침한 세상 아닌 다른 세상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성실히 잘 따른 딸을 유학 보내기로 결정한 때에 영적으로 갈급함 많았습니다. 참 교회된 교회 찾던 중 2007년 마태복음 설교하실 때 우리들교회로 인도되었습니다. 시간 지나고서야 기도 제목대로 정확히 인도하셨음을 알게 됐습니다. 말씀 듣던 중 고등학교까진 자녀 끼고 말씀으로 키워야 한다는 말에 갈등 있었지만 결국 유학 보냈습니다. 유학 보내지 않았다면 안 겪어도 될 일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구속사 말씀 듣고 가던 중 주님은 화려한 육적 성전 지어놓고 그것이 믿음인냥 살고자 했던 저를 정확히 아시고 에스겔 말씀 20장 21절 말씀으로 구원보다 세상 성공에 마음이 있던 것을 회개케 하셨고 자녀 영적으로 버려두면 안되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딸도 구속사의 말씀을 전하며 양육 되어져 갔습니다. 방학 때는 공동체에 돌아와 목장에 들어가고 학기 중엔 돌아가 학업 했습니다. 졸업해서 직장 구하던 중 영의 성전 세우고 다시 나가라고 했습니다. 

 

돌아와선 A회사 넣을 이력서를 B회사 넣었는데 붙는 은혜도 주셨고 공동체 잘 붙어가게 하셨습니다. 이런 저런 은혜 많이 부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자기 열심은 많았지만 전심이 안되어 딸은 부서 섬김에 고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권면에 부서를 섬기는 모습을 보고 동역자가 됨을 느꼈습니다.

 

자기 열심은 그래도 넘쳐서 계속 이직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유엔 3개월 연기 발표로 합격시키셨습니다. 그 도중 목자로 먼저 부르시고 양육 시키셨습니다. 그렇게 합격하고 남편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니 함께 교회 3월부터 나오게 됐습니다.

 

올해 딸과 함께 로마 갔는데 사명으로 부르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집을 계약했는데 주님은 하루도 오차 없이 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예비해주심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은혜가 딸이 목자의 삶을 잘 감당하고 인권 아닌 하나님 주권 외치는 자가 되고 영혼 구원위해 목자의 삶 살라고 예비해 두신 것 같았습니다.

 

한인교회 가서 뵙는 분마다 QT책을 드렸습니다. 5월 19일 주일 말씀에서 택자는 광야를 택해야 한다고 하셔서 말씀대로 교회를 정했습니다. 다른 교회들보다 거리도 멀고 인원도 적었는데 그것이 더 큐티를 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딸도 저녁 목장 모임 준비하기 예배 시간이 넉넉했습니다. 일 주일에 한 번씩 혼자 큐티도 올리고 우선 큐티인 9,10월호 20권을 보냈습니다. 같은 교회 자매들도 예배드리게 하고 있습니다.

 

로마도 동성애가 판을 치고 악을 행하기에 한계가 없습니다. 저 역시도 세상 행복만 구하다 죽을 인생이었는데 삶으로 대가 치르게 하시고 하나님 모르는 인생은 즐거워 할 일이 없음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6월 2일 주일 설교에서 나에게 인생은 별 것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준 배우자가 최고의 배우자고 인생은 그저 실망하다 끝나는 것이고 결론은 주님만이 살 길이고 갈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부모 배우자 형제가 수고해 이 자리에 있음을 감사합니다. 낮추시고 주님만이 살 길이었음을 가르쳐준 최고의 환경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성벽 봉헌 모습이 각자의 질서대로 이뤄짐을 상상하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대로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알고 심히 즐거워 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게 하는 우리 가정 목장 교회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벽 봉헌식에 참여하려면 먼저 내 몸과 마음 정결히, 질서대로 각자 역할 순종하여 행진, 십일조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 자신을 봉헌하는 인생 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더보기

은혜받은 점

 

성벽 중수 이후 낙성식 과정에서 분문을 통과해 샘문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우리네 인생과 같아 은혜가 되었다. 분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이 내가 동물의 배설물보다 못한 존재임을 알아야 하는데 여전히 냄새나는 곳은 피하고 싶고, 이상한 사람은 정죄하고 판단되고, 피해를 주는 사람을 못마땅히 여긴다.

 

일례로 나는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 앞에 타려고 떡 하니 서있는 사람들이 너무 정죄된다. 가끔 그냥 어깨로 밀어버리고 내리곤 한다. 이게 내  본 모습, 더러운 모습이다. 그 사람들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할 수 있지만 그 모습보다 그 사람들을 미워하고 정죄하는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더 악하다는 것이 가슴 깊이 깨달아 져야 앞으로 어깨빵을 안하고 조심스레 내릴 수 있게 될 것 같다. 

 

분문을 통과해 샘문에 이르는 삶이 되고 싶다. 나눌 것만 있는 인생,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더 사랑해서 죄가 저절로 끊어지고 그렇게 분문을 통과한 내 모습을 나누고 죄인된 내 본성을 날마다 말씀과 큐티와 공동체의 권면으로 회개해 나가는 내가 되고 싶다.